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안녕들 하십니까 되돌아보기

 

 [더연] 안녕들 하십니까 되돌아보기

 

 

 

 

“어떤 것도 얻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주장하기 위한 혁명이다.”

68혁명, 그것은 기존의 다른 혁명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등교육을 받고, 자본주의 사회의 수혜를 온몸으로 누린 20대 청년들은 모두 거리로 뛰어나와 각자 주장하고 싶은 바를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 혁명엔 주동자가 없었다. 때문에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청년 옆에서 또 다른 청년이 이웃의 무례함을 고발하는, 이 독특한 모습은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며,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민주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바로 ‘자기결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68혁명과 같이 자기결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시민들의 혁명이 2013년 말, 대한민국에서도 일었다. 바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다. 바리케이드 대신 대자보를 붙인 이 혁명은 평범한 20대 대학생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주동자 없는 혁명에 1020세대는 자발적으로 응답했고, 그 형식과 소재 또한 정치적인 것에서부터 웹툰 형식의 세태 풍자까지 다양하기만 하다. 허나 중구난방으로 보이는 여러 주장들엔 분명 공통점이 숨어있다. 기성세대의 바람과 치열한 경쟁사회를 핑계로 세상과 주변 이웃을 외면하고 살았다는 자기반성이 바로 그것이다. 스펙괴물로 불리던 1020세대가 ‘안녕들 하십니까’를 통해 자기 삶의 주도권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1020세대는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채 살아왔다. GDP의 1.5%에 이르는 사교육 시장 규모는 학원에 매인 10대의 삶을, 8.7%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 실업률(2014년 1월 기준)은 도서관을 벗어날 수 없는 20대의 삶을 방증하게 한다. 모든 것과 경쟁해야 하는 1020세대에게 경쟁 이외의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용산 철거민 사태를 비롯해 밀양 송전탑, 철도 노조 탄압 등 절차와 인권이 사라진 비민주적인 상황 앞에서도 1020세대는 시험에 매진해야 했다.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정치 영역으로까지 확장됐다. 정치영역에서 무관심, 그것은 곧 소외를 의미했다. 20대일 때, 김대중, 김영삼 등 걸쭉한 정치 거물을 배출해낸 386세대와 달리 결국 지금의 세대는 자신들을 대표할 어떠한 정치 대리인도 내세우지 못한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엔 1020세대의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때문에 ‘안녕들 하십니까’는 우리 사회의 반가운 손님이다. 미래사회의 주역인 청년층이 정치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밝은 가능성을 품게 됐다. 문제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의 태도다. 여권과 보수 언론들은 ‘공감’ 대신 ‘철도노조’란 단어에 먼저 반응하였다. 대자보 자체를 야권 지지자들의 선동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1020세대의 정치적 자각을 퇴색시켰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또한 선동이란 단어 앞에선 무력했다. 대자보를 붙인 10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강요받으며 반성문을 써야 했고, 대학에 붙은 대자보들은 깨끗한 환경을 위해 강제로 철거당했다. 고루한 색깔론이 겨우 돌아온 1020세대의 주도적 성찰을 방해하고 있다.

 

 

흔히 ‘68혁명’을 실패한 혁명이라고 부른다. 정권 교체 등 정치적으론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이 주장하던 ‘자기결정권’은 결국 프랑스 사회의 근간이 돼, 이후 대학의 서열화 폐지 등 다양한 탈권위를 이뤄냈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일어난 1020세대의 자각도 마찬가지다. 미래세대의 다양한 생각들은 기성세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바람을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미 ‘안녕들 하십니까’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인권 문제 등에 활발히 참여하며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니 기존의 판단을 앞세워 이 바람을 억지로 방해하진 말자. 비록 지금은 미약할지라도 추후 큰 바람 돼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룰 지도 모르니. (2014.03)

 

 

http://ibd.or.kr/2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