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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기/본것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 화이팅, 우리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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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박준화
극본 윤난중
출연 이민기, 정소민, 이솜, 김가은, 박병은 등

tvN 16부작(2017.10.09.~2017.11.28)
시청률4.9% (닐슨코리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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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꽃다운 나이. 신문사 인턴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대한민국에 '년'으로 끝나는 욕이 이렇게 다양하구나란 깨달음이었다. 수십 가지의 '년'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물이라도 찔끔 보이면 "이래서 여자는 안돼" 소리를 들을까 봐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후 취직한 곳들이 하필 그 나물에 그 밥인 방송 쪽이라 이젠 욕과 성희롱에도 내성이 생겼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 그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모욕을 목격한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케케묵은 20대 시절을 꺼내든 건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이수지'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와 곧바로 최고 연봉 기업에 입사한 알파걸 '이수지'. 하지만 그 똑똑한 머리는 어디에 팔아먹은 건지, 남자 직원들의 성희롱 앞에선 고구마 백 개 먹은 것처럼 그저 허허실실 웃기만 한다.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을사 대표인 8살 차이의 썸남. 분명 연애 한 번 못해본 것 같은 허당이었던 그가 이수지 앞에선 갑자기 백마 탄 기사님으로 돌변한다.

사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이수지들의 회사생활도 아마 극 중 이수지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걸 알기에 상사의 저질 농담에도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대신 술자리에서 상사를 뒷담화하며 회사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심지어 우린 이수지보다 연봉도 낮다!) 그리고 가벼운 연락조차 부담스러울 월, 화요일이면 tv 앞에서 드라마를 기다린다. 잠시라도 캐릭터에 빙의해 현실을 잊을 수 있길 꿈꾸며.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멋진 왕자님이 위기에 처한 여성을 구해주는 이야기가 인기이긴 하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엔 여성 캐릭터만 세 명이 나온다. 이미 극의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집에 경제적으로 의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연 캐릭터까지 그럴 필욘 없지 않은가. 내가 보고 싶었던 이수지는 선배의 저질 농담에 가운뎃손가락을 당당히 올리는 신여성이었는데....비현실적이라 욕먹어도 상관 없으니,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여성 캐릭터를 꿈꾼다. 어차피 드라마에선 현실을 찾으려는 게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