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자주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나를 알아봐 준 곳이 이 곳이었으니 최선을 다한다 생각했지만, 글쎄.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 이 일을 정말 좋아했었다. 내 꿈은 아직 드라마라며 2년 연속 드라마 강좌를 듣고 있지만, 강의를 듣는 내내 오히려 커진 건 좋은 시나리오에 미련이었다.

솔직히 말해 일 자체는 여전히 정말 좋다. 내 최초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나를 즐겁게 해줬던 유일한 콘텐츠는 어쩜 이 장르 뿐이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라, 새로운 작품, 새로운 제작 방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저런 포맷으론 저런 작품이 가능하겠구나, 요즘은 저런 기획도 먹히는 구나 하는 두근거림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스러운 기분은 대체 왜 때문일까.

자꾸만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나간다.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소통의 부재는 계속된다. 아니,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건가. 뭐 이런 저런 이유를 말해보지만, 결론은 현장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일이란 건 사람이 하는 게 반 이상인데, 이 일엔 사람이 남질 않는다. 심지어 나조차도 결국.

회사 생활을 하며 느낀 건 내가 내 생각보다도 더 안전지향적인 성향이란 점이다. 대학 다닐 때 새로운 경험들을 꽤나 많이 시도해봤고, 때문에 취업한 이후에도 이러한 모험적인 성향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란 사람은 붕괴의 조짐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겁쟁이에 불과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고작 몇날 몇주에 걸쳐 술마시고, 간을 썩히는 것 뿐.

5년이다. 5년이면 누군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누군가는 대리 직함으로 명함을 새로 팠을 시간이다. 근데 대체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구질구질하게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이게 아이피에 대한 미련인지, 아니면 애착하는 장르에 대한 미련인지, 것도 아니면 그저 겁 많은 서른 중반의 불안함인지 난 도통 모르겠다. 서른이 되면 세상의 순리가 좀더 명확히 눈에 보일 꺼라 생각했는데… 10대때나 20대 때나, 지금이나 눈앞이 깜깜하기는 언제나 마찬가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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