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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이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자

 

[더연] 아동학대, 이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자 

 

 


촉의 명장 이엄이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제갈량으로부터 “오의 육손(오의 총사령관)이 직접 대군을 끌고 온데도 능히 막아낼 만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삼국지의 명장이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좌천시킨 이 역시 제갈량이었다. 이엄은 군량미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부정을 저질렀고, 이에 대해 제갈량은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이엄이 좌천된 이후, 해이했던 촉의 군기는 바로 섰고, 육손은 이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군기가 바로 선 촉에 감히 군사를 내지 못했다.

 


관대한 양형기준은 현대판 이엄을 마구 양산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최근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아동학대’이다. 현재 아동학대는 형사가 아닌 가정폭력 특례법으로 분류돼 있다. 때문에 가정폭력의 양형기준은 다른 형사 사건에 비해 턱없이 낮은 편이다.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현재 판례는 성폭력의 경우만을 제외하고 가해자 부모의 친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성폭력 가해자 부모의 친권도 인정된다. 특례법의 목적이 가해자의 처벌이 아닌 ‘가정보호’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 덕분에 아동을 학대하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는 법의 보호를 받는다.

 


제갈량의 엄격함은 2013년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 초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CCTV 설치 의무화’와 ‘부모 교육 강화’를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부모에 의한 학대가 전체 학대 중 90%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런 정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CCTV 설치를 일반 가정집에까지 의무화할 순 없을뿐더러, 전체 인구 중 30% 이상을 차지하는 2030대에게 부모교육법을 전달하는 것도 현실적으론 무리다. 가장 문제인 것은 정부의 이런 예방대책이 가해자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정부의 대책을 비웃 듯 불과 몇 달 만에 울산계모사건과 칠곡계모사건이 우리사회를 다시 뒤흔들었다.


 

물론 지난 두 사건 이후, 정치권에서도 아동학대에 대한 다양한 법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양형기준을 강화하고, 아동학대 방지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여론을 수습하기 위한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2014년 정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아동보호 예산으로 증액 요청된 436억 원은 전액 삭감됐고, 학대 피해아동 전담 보호시설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확충 등 추가 예산이 필요한 항목 또한 대부분 정부의 종합대책에서 누락됐다. 또 특례법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사와 함께 출동해야 하지만,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 중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겨우 50곳뿐이다. 특례법에 대한 논의만 뜨거울 뿐, 법을 집행할 실질적인 인력과 인프라는 한없이 부족하다.

 


꿩은 내가 안 보이면 남들의 눈에도 자신이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냥꾼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날개로 자신의 눈을 가리거나, 궁둥이를 치켜든 채 바닥에 엎드린다. 현재 아동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꿩 머리박기와 같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외면한 채 당장의 상황모면에만 급급한 형국이다. 양형기준을 바꾸는 일이 단기적인 대책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수반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가해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머리박기만 계속한다면 결국 폭력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채갈 것이다.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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