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좋아했던 일본 만호 중 주인공이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 있었다. (카드캡처 사쿠라였나...) 소중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어떡하든 간직하려 애쓰던 주인공은 결국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의 기억을 포기한다. 어린 나는 그저 주인공이 우는 것에 따라 같이 슬퍼했을 뿐, 주인공이 그토록 소중히 하는 기억의 가치에 대해선 그리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어릴 적 소중한 기억이래봐야 좋아하는 친구나 숨겨둔 과자의 위치 정도이니.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이 더 많아진 요즘에 와서야 세계 평화와 견주어도 아쉬울 기억의 가치에 대해 새삼 곱씹어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 기억은 단순히 경험들이 쌓여 생성된 데이터베이스 같은 게 아니라 이젠 두번 다시 경험해볼 수 없을 감각의 영역이다. 누군가에 대한 첫 사랑의 설렘, 건강했던 부모님이 처음 아플 때의 당황스러움, 고달팠던 첫 노동과 가족으로부터 일탈해본 첫 여행. 이젠 익숙하게 겪는 많은 것들이 모두 처음엔 너무나도 강렬했다.

 

슬픈 건 감각은 정보보다 더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했던 기억만 있을 뿐 그때의 감각은 이제 내게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 그것을 했던 사실조차 희미해지는 판국이니... 돌이킬 수 없는 감각의 소중함을 깨닫고 뒤늦게서야 사라지는 기억들을 간신히 붙들고 있다. 다행히 예전에 써둔 글이나 찍은 사진들이 적지 않아 아직 그리 늦은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무섭다. 이 모든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 심지어 이것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해버릴 나 자신이 말이다.

예전엔 글을 쉽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글쓰기에 익숙치 않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쉽게 쓰인 글은 쉬운 만큼 나의 감정을 얕게 담고 있는 것만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아쉽다.

그때 설령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라 할지라도 한 자라도 더 많은 글을 남겼어야 했는데.

얕은 마음과 완성될 수 없는 불안정한 감성이 어린 젊음의 전유물임을 그때의 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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