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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국가와 쓸모없는 개인

 

 [더연] 신자유주의 국가와 쓸모없는 개인

 

 

 

 

 

금내천(金乃天), 인내용(人乃用). ‘신자유주의’란 이름의 국가에선 돈이 곧 하늘이요, 사람은 곧 쓸모다. 야근으로 생산성을, 투표로 정치력을, 소비로 구매력을 증명해야만 개인은 비로소 1등 신자유주의국(國) 신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만이 인류의 자연적 권리를 보장받을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이란 말을 비웃듯 신자유주의 국가에서의 자연적 권리는 사람을 가린다.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라 후순위로 밀려난 ‘쓸모없는’ 사람들은 권리에 대한 자격이 없다.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현재 박근혜 정부는 단호한 증세 거부와 건전재정 기조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향한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신자유주의 국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이며, 쓸모없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이름은 아동, 노인, 빈민 등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이들은 생산력보단 비용이 더 큰 비효율적인 존재들로 취급된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정책은 정부의 재정건정성을 해치는 ‘비용’으로 치부되고, 이에 따라 관련된 정책들 또한 오늘날 제한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국가를 향한 박근혜 정부의 열망은 무서울 정도여서, 이제는 벼랑 끝에 남겨진 한 뼘의 보루조차 안전하지 못하다. 가장 기본적인 복지정책, 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악 추진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국민이 정부로부터 기초적인 생활에 대한 자연권을 법적으로 보장 받은 지 이제 겨우 14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개별급여’란 명목으로 국민 생존권의 마지막 보루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해체하려 한다. ‘최저생계비’ 제도를 폐기하는 대신 상대빈곤선을 도입하겠다 말하면서도, 법으로 급여의 구체적인 기준을 명시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국민 생존권은 앞으로 법이 아닌 정부의 재량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은 단순한 제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재정건전성이 사회적 안전망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정적 증거인 동시에, 국민 삶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철학을 보여준다. 당장 극심한 소득 불평등과 OECD국가 중 하위권에 머무는 삶의 만족도를 해결해야 할 상황임에도 이 정부는 국민 삶을 포기함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 ‘한국형 복지국가’와 ‘생애 맞춤형 복지’가 사라진 빈자리엔 새로운 복지 정책 대신 ‘474 경제계획’과 ‘4만 달러 시대 도약’과 같은 경제적 지표들이 채워졌다. 이제 개개인은 더 이상 쓸모의 우열을 위해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모두는 국가 경제를 위해 언제든 내쳐질 수 있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다시 지난 2012년 대선때로 돌아가 보자. 그 해 겨울은 ‘복지’로 뜨거웠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여당이었음에도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보장,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파격적인 복지 공약들을 약속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란 헌법 제34조도 자주 언급됐다. 국민들은 희망을 품었고, 대통령 당선을 가능하게 한 51.6%의 득표수는 이런 기대감들이 빚어낸 선택의 결과물이다. 이날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국민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신이 본연의 자연적 권리에 따라 인간답게 존중받을 수 있기를 꿈꾸며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러니 더 이상 국민을 쓸모로 나누지 말자. 비용에 따라 국민을 포기하는 것도 이젠 그만두자. 지금의 신자유주의 정부에게 권력을 양도한 이는 바로 그 ‘쓸모없는’ 국민들이다.(20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