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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사라진 술자리 문화를 꿈꾸며

 

 [더연] 술이 사라진 술자리 문화를 꿈꾸며

 

 

 

 

 

서울의 밤문화에 익숙했던 내게 이탈리아 밀라노는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4대 패션도시라고 하여 크게 기대했건만, 클럽은커녕 그 흔한 팝(pub)조차 없었다. 물론 와인 종주국답게 이탈리아인들은 와인을 사랑했다. 퇴근 후 와인 한 잔을 하며, 3~4시간 동안 수다를 즐기는 게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이탈리아 친구들 사이에서 와인 한잔을 거의 원 샷 하듯 비웠다. 한국에서처럼 술을 두세 잔 연이어 주문하자 친구들이 신기하단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오늘 술 마시러 나온 거야?”라고.

 

 

술집에서 술 마시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을 하겠는가. 우리는 취하기 위해 술집을 찾는다. 많이 마시는 것만으론 성에 안 차 사람들은 더 빨리 취할 수 있는 폭탄주를 개발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우리는 맥주에 소주를, 소주에 매화주를 섞는다. 물론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들 살면서 한 번쯤은 술 마신 다음 날의 낯섦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상대를 위해 죽어줄 수도 있다며 호언장담하던 술자리에서의 우정이 마치 타인의 경험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그때 비로소 친교 따위의 변명 대신 그저 취하고 싶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술밖에 남지 않은 술자리 문화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일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빨리 취하겠다는 목적을 위해 술에 술을 섞는 장면은 목표를 위해 주변의 것을 희생하는 평범한 일상과 닮아있다. 자식을 키우는 대한민국 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입시다. 부모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 아이와 친한 친구의 이름보다도 아이의 성적을 가장 중요시한다. 상대의 사회적 지위나 부에만 관심을 쏟는 쇼윈도 부부도 크게 늘었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자신이 설정한, 혹 주변인들이 설정한 목표에 온 힘을 쏟는다. 안타까운 점은 목표나 그에 대한 성취감 따위가 인간관계의 핵심은 아니란 사실이다.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전제돼야만 인간적인 우정이 형성될 수 있다.

 

 

유엔 인구통계연감에 따르면 한국은 1996년부터 일본의 조이혼율을 크게 앞질렀다.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몇 년째 전 세대에 걸쳐 자살률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단 사실은 이제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물론 보통 경제가 불황일 때, 이혼율과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 그걸 고려한다 하더라도,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우리의 이혼율과 자살률만 유독 높게 나타난다는 것은 경제, 그 외의 것도 문제란 의미 아닐까. 목표제일주의 속에서 주변을 돌보지 못하는 우리가 진정 돌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지. 그런 우려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술자리에서 술 대신 말을 먼저 찾아야 한다. 이해와 공감은 바로 그 대화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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