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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기/본것

[드라마] 시카고타자기 - 뒤늦게 쓴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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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김철규

극본 : 진수완

출연 :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 등

편성 : tvN, 16부작 (2017.04.07.~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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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쩐의 전쟁>을 이야기하던 2007년 여름, 오직 한 친구만이 '여자라면 <경성스캔들>을 봐야 한다'며 남자주인공의 잘생김을 무기로 날 유혹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난 그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넓은 어깨와 잘 생긴 외모, 거기에 능글맞은 성격까지! 물론 <경성스캔들>엔 남자주인공 말고도 추천하고 싶은 점이 삼천 자의 글은 거뜬히 채울 만큼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다음 기회에. 오늘은 <경성스캔들>에서 이루지 못한 미완의 역사의 완결편, <시카고 타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나의 시대 안에만 머물렀던 전작과 달리 <시카고 타자기>는 귀신과 전생체험이란 초현실적 소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우연히 얽힌 남자, 여자 주인공이 사실은 전생의 연인이었다는 빤한 스토리랄까. 하지만 <시카고 타자기>는 전생이 하필 일제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금은 더 특별하다. 마음이 빈곤했던 청춘들이 자신과는 1도 상관이 없을 줄 알았던 옛날 옛적의 과거를 체험하며 지금을 있게 한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을 인식한다. 전생체험은 로맨스를 위한 식상한 장치가 아닌, "현실에 감사하라"는 작가의 메시지였다.

과거 근대 조선을 배경으로 작품을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가 면접에서 처절하게 털린 기억이 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일제식민지는 우리에게 있어 실패한 역사이고, 한국 시청자들은 실패한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물론 털린 이유는 그 밖에도 많았다) 하지만 진수완 작가는 <경성스캔들>에서 낮은 시청률을 경험했음에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카고 타자기>를 한 번 더 집필했다. 그녀라고 시청률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시청률이란 압박에 저항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작가의 뚝심이 <시카고 타자기>를 탄생시킨 것이라 감히 추측해본다.

아쉽게도 <시카고 타자기>의 시청률 역시 방송사가 기대한 바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매주 날아왔을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흔들림 없이 밀어붙인 작가와 마지막까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그리고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피디와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당신들 덕분에 2017년, 안란한 삶 속에서 과거를 잊고 지냈던 한 청춘이 1930년대 소소한 일상조차 너무나도 큰 욕심이었을 과거의 청춘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나의 두 달을 행복하게 해준 <시카고 타자기>에 감사한다.